책소개
종교개혁자 루터의 복음적 가르침의 핵심종교개혁자 루터는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로마서 강의를 준비하면서, 성경의 핵심적인 가르침은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은혜에 의한 칭의’라는 교리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이 책 『루터의 로마서 주석』에는 루터의 확신과 믿음이 담겨 있다. 이 로마서 주석은 성경에 대한 통찰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역사적 의의를 보아서도 중요한 책이다. 이 책은 마르틴 루터 자신의 영적 순례와 종교개혁의 뿌리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귀중한 입문서 역할을 한다. 성령 하나님은 이 주석서의 서문을 사용하셔서, 1738년 5월 24일 런던 올더스게이트에서 열린 기념할 만한 집회에서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의 가슴에 그리스도의 구원의 진리를 각인시키셨다.『루터의 로마서 주석』 원고는 오랫동안 그 행방이 묘연하다가 4백 년 만에 베를린에 있는 프로이센 국립 도서관에서 원본이 발견되었고, 요한네스 피커 교수의 편집 작업을 거쳐서 1908년 9월에 출간되었다. 컨콜디아 신학교 교수였던 테오도르 뮐러(J. Theodore Mueller, 1885-1967)가 해설을 덧붙여서 완성한 이 실제적이고 읽기 쉬우며 영혼을 고무시키는 주석서는, 독자들에게 루터의 복음적인 가르침의 근본들을 알게 해 줄 것이다.
저자소개
종교개혁자이자 개신교 신학의 아버지인 마르틴 루터는 1483년 11월 10일 독일 아이스레벤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만스펠트와 아이제나흐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뒤, 1501년 에르푸르트 대학교에 입학하여 1502년과 1505년에 각각 문학사와 문학석사 학위를 받는다. 출세를 열망하던 아버지의 강권으로 법대 박사 과정에 진학하지만, 슈토테른하임에서 만난 뇌우 아래서 수도사가 되기로 서원한다. 곧바로 학업을 중단하고 2주 만에 에르푸르트의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에 입회하여, 1507년 사제로 안수받게 된다. 1512년 비텐베르크 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이래로 성서학을 가르치며 발견한 ‘칭의’의 진리는 그로 하여금 종교개혁자의 길을 걷게 만든다. 1517년 10월 31일 면죄부 판매에 반대하여 비텐베르크 성채 교회당 정문에 내건 ‘95개조 논제’는 종교개혁을 촉발하는 동시에 중세 시대에 종말을 고하는 신호탄이 된다. 교황의 파문과 보름스 제국의회에서의 추방령(1521년), 농민전쟁(1525년), 수녀원에서 탈출한 카타리나 폰 보라와의 결혼(1525년) 등 1546년 2월 18일 63세의 나이로 고향 아이스레벤에서 숨을 거두기까지 수많은 논쟁과 굴곡의 시기를 거치지만, 교회 공동체를 사랑하는 목회자이자 말씀에 사로잡힌 신학자로서 개신교 신학의 대문을 열게 된다.
독일어 성경번역을 통해 성경의 대중화를 이끌어 표준 독일어 형성에도 공헌한 루터는 활발한 저술 활동으로 교육, 문화, 사회복지, 법, 정치를 아우르는 종교개혁의 이론적 토대와 방향을 제시한다. ‘루터의 3대 논문’으로 꼽히는 『독일 기독교 귀족에게 고함』『교회의 바벨론 포로』『기독교인의 자유』(이상 1520년)가 종교개혁적 성향이 가장 잘 드러난 저술로 꼽히지만, 루터는 자신이 집필한 3천여 권의 책 가운데 『노예의지론』(1525년), 『대교리문답』『소교리문답』(이상 1529년)만을 수작으로 추천한다. 그중 『대교리문답』은 개신교 최초의 교리문답서이자 개신교적 성경 이해가 어떤 것인지를 직접 파악할 수 있는 시금석으로 각 교파 교리문답서의 지침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