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게네스 성경해석학 서사기
교부 오리게네스와 초기 그리스도교 성경해석학의 동반 성장기오리게네스 : 3세기 교부 오리게네스는 양면성 사이를 걸어간 경계인이었다. 고대 로마 역사에서 ‘철인 황제 시대’의 말기였던 185년에 태어나 ‘군인 황제 시대’의 절정기였던 254년에 사망했으며, 순교자의 아들이면서 철학자의 제자였고, 평신도이면서 성경학자였으며, 성경 기록의 무대가 된 현장을 답사할 만큼 문자적 해석에 철저했으면서 영적 해석으로 기억되고, 곳곳에서 초청받는 석학이면서도 새벽 일찍 일어나기 위해 마룻바닥에서 쪽잠을 잔 수도사였으며,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나 팔레스티나에서 묻혔고, 그리스도교 초기 역사에서 변증의 시대를 지나 신경과 신학의 시대로 들어가는 전환기를 이어주었으며, 후세대 교부들로부터 추앙 아니면 정죄를 받았고, 헬라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이집트식 이름을 받은 경계인이었다. 이렇듯 날카로운 양면성으로 오리게네스는 교부들 사이에서 "모두를 날카롭게 벼려주는 숫돌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했다(나지안조스의 신학자 그레고리오스, 4세기).성경해석학 : 오리게네스는 성경을 텍스트 ‘상징’으로 이해했고, '비유' (흔히, '알레고리') 해석 방법론을 통해 그 안에 담긴 신적 '비밀'을 밝히는 성경해석학을 정립해 나갔다. 그에게 성경 해석이 역사·문자적 의미에서 출발하여 사람에 관한 구원적 의미를 거쳐 신에 관한 영적(즉, 비밀스러운) 의미까지 이르는 순례였다면, ‘알레고리’는 성경에 기록된 문자와 문자를 비교하고 병치하면서 역사로부터 예전을 거쳐 영원까지 순례의 길을 이어주는 방식이었다. 하나의 증표를 나누어 가진 뒤 다시 하나로 합쳐 서로의 관계를 확인하는 데 사용한 물건을 고대 지중해 문명인들은 '상징'이라고 불렀다. '유'사한 것끼리 '비'교하고 이어 붙이면서 텍스트 '상징'을 해석하는 방식은 이집트부터 바빌로니아 제사장들까지, 플라톤의 제자들부터 유대 랍비들까지 사용한 범지중해 문명사회의 표준 방식이었다. 이 표준을 따르면서도 오리게네스는 성경을 유일한 텍스트 '상징'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플라톤의 제자들과 자신을 구별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비유' 해석의 유일한 인도자로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유대인 랍비들과 자신을 구별했다.서사기 : 오리게네스나 그의 성경해석학이나 주위를 둘러싼 양면성 사이에서 끝없는 비교를 통해 성장했다. 그렇게 오리게네스는 자신과 동반 성장한 성경해석학과 함께 성경과 신경과 성례를 중심으로 4세기부터 구가될 '상징의 시대'를 향해 그리스도교 전통의 문을 열어 주었다. 이 책은 오리게네스와 그의 성경해석학이 동반 성장한 서사를 담은 기록이다. 이 책도 이 둘을 닮아 간결하고(Short), 파격적이며(Striking), 여운을 남긴다(Stirring).
번호 | 별점 | 한줄평 | 작성자 | 작성일 |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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