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가 된 편지 - 한국을 사랑했던 프랭크 윌리엄스 선교사의 편지
\ 3.1 독립운동 100주년,
한국을 너무도 사랑했던
프랭크 윌리엄스 선교사의 169통의 편지!\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공주 영명학교를 설립하고,
민족교육의 불씨를 지핀 윌리엄스 선교사의 삶과 사명!
\ 그가 남긴 편지는 글마다 사랑이었다.
사랑이 아니고서는 그렇게 끈질길 수 없었다.
그 끈질김이 오늘의 한국 교회를 이루었다.\
프랭크 윌리엄스(Frank E. C. Williams, 한국명 우리암, 1883-1962)는 1883년 미국 콜로라도 주 뉴윈저에서 태어났다. 1906년 덴버대학교를 졸업하고 23세 약관의 나이로 불모지의 땅 한국에 파송되었다. 그는 34년간 감리교 충청 지역 선교 책임자 및 공주 영명학교 교장(초대, 2대)을 지내며, 민족 교육 말살 정책을 펼치는 일제 치하 속에서 한국의 자주 독립과 다음세대를 향한 교육의 불씨를 지폈다. 교육만이 이 나라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일념으로 제대로 된 교육 시설이 없는 충청 지역에 공주 영명학교를 세워 후학 양성에 힘썼으며, 우수한 인재들을 미국으로 유학시켜 훗날 이 나라의 미래를 밝힐 등불로 삼고자 했다. 충청 지역에서 일어난 3-1 독립운동은 그가 세운 공주 영명학교 학생들과 교사들에 의해 주도됐으며, 이 학교 출신의 명사로는 초대 내무부 장관 조병옥, 초대 충남지사 황인식, 열사 유관순 등이 있다.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된 그는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인도 선교사로 파송되는데, 그곳에서도 광복군과의 특별한 관계를 맺고 영국군과 함께 대일 항전을 전개하는 등 통역관으로서 큰 활약을 펼쳤다. 광복 후 그는 미군정 농업정책 고문관으로 다시 한국에 돌아와 복음 전파는 물론 우리나라의 교육과 농업 발전 및 정부 수립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은 프랭크 윌리엄스 선교사가 이 나라의 민족 교육과 자주 독립을 위해 애써온 내용들을 169통의 편지를 통해 당시의 시대상을 재조명하고, 더불어 이 나라를 위해 본인 은 물론 가족의 일생과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희생한 선교사들의 삶과 사역들을 되짚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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