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철인 황제 아우렐리우스의 고뇌가 담긴 걸작 『명상록』의 원전 번역본이다. 황제이자 스토아 학파 철학자였던 아우렐리우스는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로마를 책임지고, 인생의 대부분을 전쟁터에서 보내야 했다. 그러나 ‘철학하기에는 인생의 어떤 다른 상황도 네가 지금 처해 있는 상황만큼 적합하지 않다는 것은 명명백백하지 않은가!’(186쪽)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전쟁터에서도 끊임없이 사색을 멈추지 않은 철학자였다.『명상록』에는 자신의 결함에 대한 경계, 스토아 학파의 입장에서 자신에게 들려주는 충고와 반성, 자신에게 교훈이 될 만한 짤막한 경구와 인용문, 그리고 신의 섭리, 인생의 무상함, 도덕적 정진, 인류에 대한 관용 등 우주에 홀로 선 고독한 인간에게 필요한 삶의 자세들이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은 무엇보다 자연에 대한 순응을 강조한다. 자연에 순응한다는 것은 각각의 본성에 따르고 그것을 최대한도로 발현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삶에 대한 혜안과 인생에 대한 겸손한 자세를 스스로 끊임없이 일깨우기 위한 저작이기에 『명상록』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인생 지침서의 고전으로 통하고 있다.
저자소개
아우렐리우스는 121년 4월 26일 로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안니우스 베루스는 로마의 귀족이었으며 어머니 도미티아 루킬라는 집정관 카르비시우스 투루스의 딸로서 교양 있고 경건하고 자애로운 부인이었다. 베루스 집안은 원래 스페인에서 살았는데 마르쿠스가 태어나기 1백 년 전부터 로마로 이주하여 살기 시작했다. 그의 할아버지 안토니우스 베루스는 총독, 집정관, 원로원 등의 요직을 지냈다. 아우렐리우스는 여덟 살 때 아버지가 죽자, 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랐다. 어머니도 그가 어릴 때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병약하여 학교에 다니지 않고 훌륭한 가정교사들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그는 공부에 열중했으며 뛰어난 자질을 나타내어 당시 황제 하드리아누스는 아우렐리우스를 사랑했으며 그를 ‘가장 진실한 자(Verissus)’로 부르기도 했다. 아우렐리우스의 숙모 파우스티나와 그녀의 남편 안토니누스 피우스에게는 아들이 없어 아우렐리우스를 양자로 맞아들여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라고 이름 붙여 주고 그들의 후계자로 삼았다. 138년 아우렐리우스가 17세 때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죽자, 아우렐리우스의 양부(養父)인 안토니누스 피우스가 제위를 물려받았다. 이때부터 아우렐리우스는 미래의 황제로서 통치하는 법과 황제로서 해야 할 일들을 섹스투스, 루스티쿠스, 프론토 등에게 배운다. 139년 아우렐리우스는 피우스 황제의 후계자로 정해지고 황제의 딸 파우스티나와 약혼한다. 그 후 재무관과 집정관에 오르고 145년 24세 때 파우스티나와 결혼한다. 146년 장녀 안니아 카렐리아가 태어나고 이후 13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8명이 요절하고, 1남 4녀만이 남았다. 161년 40세 때 피우스 황제가 죽자 아우렐리우스가 뒤를 이어 즉위하고 의동생인 루키우스 베루스를 공동 황제로 삼았다. 이때부터 게르만족, 스키타이족 등 외적의 침략과 변방 야만족의 소란 등 외부로부터의 위협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페스트와 티베리스강의 범람으로 인한 기근 등으로 시련을 겪는다. 그러다 169년 공동 황제인 베루스가 죽고 게르마니아가 다시 공격해 오자 아우렐리우스는 다뉴브강에 진을 치고 그곳에서 생활하고 이때부터 이 책《명상록》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야만족과의 싸움과 카시우스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원정을 떠나고 이 원정에서 아내 파우스티나를 잃는다. 그 후 북방의 전장에서 돌아오는 도중 페스트에 걸려 며칠 동안 앓다가 180년 3월 17일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